2002년 인천 송도에 단백질 의약품 제약업체 셀트리온을 세운 서정진(51·사진) 회장이다. 그동안 3000여억원을 들여 5만L 규모의 최첨단 동물세포 배양시설을 짓고, 지난해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2007년 635억원의 첫 매출과 함께 14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영업이익률이 22%에 달한 것이다. 그 전까지는 연구개발과 인건비로 수백억원을 썼다. 2006년만 해도 265억원의 적자를 봤다.

셀트리온의 매출은 미국의 거대 제약사인 브리스틀마이어스스퀴브(BMS)의 ‘아바타셉트(상품명 오렌시아)’를 위탁 생산하면서 일어난 것이다. 아바타셉트는 BMS가 개발한 관절염 치료제로, 단백질 의약품이다. 단순한 화학물질 합성이 아니라 엄격한 시설기준에서 동물세포를 배양해야만 얻을 수 있는 약품이다.

서 회장은 “오염원을 철저하게 차단할 수 있는 대규모 배양시설은 전 세계에 몇 곳밖에 없기 때문에 납품가는 부르는 게 값”이라며 “BMS와 앞으로 10년간 위탁생산 계약을 했고, 대금도 원화로 받고 있다”고 말했다. 거대 제약사 앞에서도 기죽지 않는 납품 회사라는 얘기다. 단백질 의약품은 고부가가치 산업의 전형으로 ㎏당 4억∼5억원이나 한다. 이것이 첫 매출과 동시에 흑자 전환에 성공한 배경이다.

BMS처럼 배양시설을 갖추지 않은 다국적 제약사 5∼6곳이 현재 단백질 신약을 대량 생산하기 위해 셀트리온과 전략적 제휴를 논의하고 있다. 서 회장은 현재 5000억원을 투자해 바로 옆 부지에 19만2000L의 배양 설비를 짓고 있다. 이 시설이 내년에 완공되면 이 분야 세계 1위가 된다. 지금은 독일 베링거인겔하임과 스위스 론자에 이어 3위다.

건국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삼성전기와 한국생산성본부를 거쳐 대우자동차 임원을 지내다 1999년을 끝으로 샐러리맨 생활을 마감했다. 대우차의 혁신을 주도하던 임원으로서 경영위기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내린 결단이었다. 같이 근무하던 12명의 기획실 직원들이 그를 따랐다. 2000년 넥솔이라는 회사를 세우고 2년 여 해외로 바이오 전문가를 찾아다녔다. 문전박대도 수없이 당했지만 지금은 다들 그의 열정에 감동해 많은 이들이 후원자로 나서고 있다. B형 간염바이러스를 발견해 7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버룩 블럼버그 박사와 스탠퍼드대 에이즈연구소장이었던 톰 매리건 교수가 대표적 인물이다.



바이오에 문외한이던 그가 창업 6년 만에 두각을 드러낸 건 발상의 전환 덕택이다. 대부분은 신약 개발에 매달리는데, 10년 안팎이 걸리고 천문학적 자금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성공 확률은 무척 낮다. 그는 생산 기반을 먼저 구축한 뒤 나중에 신약을 개발하기로 했다. 운도 따랐다. 2000년부터 2년간 바이오 선진국을 돌아다니며 조언을 구하던 중 세계적인 생명공학 기업인 제넨텍에서 동물세포 배양기술을 이전받기로 한 것이다. 제넨텍에 기술자문을 해주던 스탠퍼드대 매리건 교수를 끈질기게 쫓아다닌 결과였다.

최대 장벽은 3000억원에 달하는 시설자금이었다. 대우차에서 함께 나온 12명이 일가 친척들의 돈을 끌어모은 게 200억원. KT&G가 200억원을 출자했고, 소액주주들이 200억원을 댔다. 그러나 3000억원은 턱도 없었다. 그러던 차에 난데 없는 행운이 날아들었다. 150억원을 주고 산 10만㎡(3만여 평)의 송도신도시 매립지가 인천경제자유특구가 되면서 땅값이 치솟은 것이다. 이걸 담보로 800억원을 빌렸다. 이후 증자와 BMS의 계약금을 합해 3000억원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는 3명의 사장에게 실무를 맡기고 자신은 미래 사업 구상과 세계 시장 개척에 몰두한다. “경영자는 미래를 예측하고 돈이 될 만한 길목을 지키는 사람이지요